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가을비가 선선히 내리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 때문일까? 울산 시내 한복판, 활기찼던 문화의 거리도 오가는 사람 없이 을씨년스러웠다. 어깨를 움츠리며 들어선 곳은 울산여성의전화, 2015년 공간문화개선사업에 선정돼 교육장과 면접, 전화 상담실이 새로 생겼다. 바깥 공기와는 사뭇 다른 훈훈함이 훅 끼쳐왔다. 화사한 공간과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여성의전화 식구들의 분주한 움직임. 우중충한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는 소란스러움이 만들어 낸 온기에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륵 풀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교육장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벗어 놓은 신발 때문이었다. 울산여성의전화 교육장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좌식 교육장이다. 입식보다는 관리하기도, 실무자들이 움직이기에도 불편한 구석이 있었지만 꼭 필요했다. 이 공간의 주이용자들의 특성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상담과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서는 이용자들에게 최대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뜨끈뜨끈한 방구들이 있는 교육장이었다. 교육장에선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내담자들이 모여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끝나면 생각 나누기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 6.25 전쟁경험, 시집살이 등등. 살아오면서 입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