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이야기
[2026 여성회의] 여덟 번째 여성회의가 그린 연결의 지도
‘여성회의’는 유한킴벌리의 후원으로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는 여성운동의 공론장이자 연대의 장입니다. ‘여성운동, 새로운 전환의 모색’을 주제로 열린 2011년 제1차를 시작으로, ‘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길’, ‘코로나 시대 여성운동의 생존’, ‘여성운동의 변화와 상상’, ‘페미니즘과 기후정의 연대’까지, 때마다 지금/여기의 여성운동을 살피고 다음을 모색해 왔습니다.
지난 11월 2일과 3일,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8차 여성회의는 <여성운동, 연결의 지도를 그리다: 우리의 크로싱>이란 제목으로 서로 다른 현장의 교차점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52명의 활동가가 연결을 되짚고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었던 뜨거운 1박 2일의 현장 속으로 초대합니다.
“요즘 제 시간의 대부분은 __________입니다. 저는 _________할 수 있습니다. 저는 ________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나’를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위 문장은 이번 여성회의 참가자 간 자기소개 규칙입니다. 참가자는 빈칸을 따라 요즘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를 묻고 답하며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명함을 건네며 소속과 직함으로 시작하는 대화 대신 ‘나’를 소개하고 나의 ‘필요’를 말하는 시작점은 이튿날 마지막 프로그램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다시 연결되며, 새로운 만남을 이어간 2026년 여성회의의 현장 스케치를 살펴볼까요?

누가 어디에서 왔나요: 참가자를 통해 본 제8차 여성회의
<여성운동, 연결의 지도를 그리다: 우리의 크로싱>이란 주제처럼, 이번 여성회의의 소재는 ‘연결’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다양한 활동가 52명이 한데 모인 순간부터, 자연스레 연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자는 젠더폭력 대응, 지역 여성운동, 공동체, 기술과 환경, 국제연대, 문화예술, 연구 및 교육과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35개 조직과 5명의 개인으로 구성되었고,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활동가가 한데 모여 세대 간 소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체크인할까요: 그리고 쓰며 서로를 알아가기
한국여성재단 장필화 이사장의 환영 인사로 행사의 공식 시작을 알린 뒤 이어진, “끄덕끄덕(공감과 존중)”, “좋아좋아(평가 대신 참여)”, “토닥토닥(서로 힘 주기)”라는 그라운드룰은 행사의 지향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진 체크인 프로그램에서는 ‘함께 그리는 얼굴’, ‘상호 인터뷰’, ‘모둠 토론’을 통해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는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얼굴 윤곽은 내가, 눈과 코와 입과 표정은 옆자리 사람들이 획을 보태어 완성한 그림은 ‘나’를 닮았지만 ‘나’ 혼자 그린 얼굴은 아니었죠. 함께 그린 얼굴 옆에 쓰인 자기소개와 빈칸으로 남은 ‘만나고 싶은 사람’ 종이가 벽에 나란히 걸리며, 벽 한쪽이 네트워킹 갤러리가 되었습니다. 갤러리가 어떻게 쓰였냐고요? 글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되실 거예요!

우리의 크로싱: 아홉 개의 현장 사례에서 나아가 질문하기
두 번째 세션에서는 9개 단체가 연대와 연결의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분야도, 지역도 제각각이었지만 어딘가 닮아 있던 고민과 도전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몇 가지 사례를 아래로 전합니다.
불꽃페미액션(서울)은 상근 활동가 0명, 생업과 병행하는 액션단 50여 명으로 10년을 지속해 온 조직의 비결을 ‘붙잡는 게 아닌, 떠났다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데서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돌이켜보니 “흩어진 게 아니라 뻗어나갔다”는 말은 많은 참여자에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보슈BOSHU(대전)는 지역 청년잡지에서 출발해 멤버십·주거정책 제안까지 진행한 과정을 소개하며, 대전을 “언젠간 떠날 곳이 아니라 내 친구들이 살고 있는, 미래를 꿈꿔도 좋을 곳”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담양인권지원상담소(광주·전남)는 농민, 공공운수노조, 시민사회단체와 연대체를 꾸리고, 탄원서 1,500장과 월요집회, 끝장문화제를 통해 성폭력 수사와 재판의 전 과정에 개입한 기록을 공유하며 연대의 힘을 되새겼습니다. 참가자들이 발표 중간에 응원과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연대의 순간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창원)은 경남 지역 여성 단체의 활동 소식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웹사이트 구축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단체는 또한, 신청서와 정산서를 각 A4 한 장으로 줄이고, 활동가 건강 돌봄을 연대 사업으로 편성하며 “활동가의 안부를 묻는 것도 연대”라는 말을 통해 돌봄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전했습니다.
제주여민회(제주)는 제주 지역 성평등 마을의 연대와 연결의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읍면 172개 리 중 여성 이장은 4명(2.3%)에 불과한 제주에서, 세 단체가 하나의 사업단으로 움직여 마을 운영위원 40% 이상을 여성으로 두는 마을규약 표준조항을 만든 사례였습니다. 이 성과를 “우리가 이렇게 계속 모였기 때문”이라고 표현한 말은 꾸준한 연결과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조별로 나뉘어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발표 사례와 ‘나’의 활동을 돌아보는 질문을 하나씩 따라가며, 참여자는 각자의 활동을 더 나아가게 할 실마리와 방향을 찾는 동시에 연결과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조별 결과지에는 현장의 맨얼굴이 그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재정(보조금 사업의 불안정성)’, ‘고용불안정’, ‘지자체·정권 변화에 따른 지원 변동’, ‘정보의 중앙 집중’, ‘활동가 개인의 업무 과잉’과 같은 말 중, 가장 많이 나온 답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단체 & 활동가)’였습니다. ‘막연함, 불안함이 활동의 자율성을 막는다’는, 한층 깊은 고민을 담은 답도 보였습니다. 연결을 가로막는 것이 돈과 제도만이 아니라 마음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연대의 밤: 문화와 예술로 연결되는 우리
저녁 식사 후, 활동가의 나날들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와 함께 토크 콘서트의 막이 열렸습니다. 줌마네 이숙경 대표와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영상이 전한 따스함 때문이었을까요? 낮 시간 내내 치열한 활기가 오가던 공간에 차차 고요하고 느슨한 감각이 스몄습니다. 이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황혜림 집행위원장이 지역 여성영화제를 잇는 활동을, 싱어송라이터이자 독립영화 감독인 신승은이 영화와 음악을 오가며 발견한 일상 속 여러 교차점과 연결점을 들려주었습니다.

1일차의 마지막 공식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싱어송라이터 신승은의 공연이었습니다. 「애매한 게」와 「잘못된 기도」가 연주되는 동안, 특유의 재치가 묻어나는 가사에 간간이 크고 작은 웃음소리가 터졌습니다. 두 곡이 끝나고 기다렸단 듯 이어진 “앵콜!” 외침에 그가 꼽은 곡은 「당신은…」이었습니다. 여성,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등 사회의 비주류에게 쏟아지는 왜곡된 시선을 속 시원히 비트는 가사에 너나 할 것 없이 웃음과 환호를 보냈습니다.
연결의 장: 우리는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이튿날 아침은 잔디밭 야외 무대에서의 서클 댄스로 시작했습니다. 동그랗게 모여 손을 잡고 도는 동안, 전날 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눈 얼굴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1일차의 첫 만남에서 비친 쑥스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호기심과 관심이 맞잡은 손의 온기를 타고 전해졌습니다.

대망의 마지막 프로그램에서는 첫날 걸어둔 소개 갤러리 중 관심 가는 인물에게 포스트잇을 붙였습니다. 응원, 소개, 관심으로 나뉜 포스트잇을 통해 마음을 표현한 뒤, 포스트잇이 붙은 자기소개지를 거두어 보며 만남을 기약하는 시간은 ‘연결’을 추상적 개념에서 구체적 약속으로 잇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참가자 모두가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는 것으로 여성회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런 자리가 필요했다’는 말부터 ‘우리가 서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바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었다’는 따뜻한 소회가 오갔습니다.
이틀을 돌아봅니다. 이번 여성회의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 표현 중 하나는 ‘버틴다’였습니다. 그러나 이 버팀은 혼자 이를 악무는 일이 아니라 “혼자서 버티는 운동에서 함께 지속하는 운동으로” 변하는 과정이자 활동의 주체들이 “흩어진 게 아니라 뻗어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여성회의는 2028년이 되겠지요. 그때까지 한국여성재단은 이번에 그려진 연결 지도가 한 번의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가 그린 선이 실질적 협업과 사업으로 이어지는 길을 함께 찾겠습니다. 2년 뒤 더 넓은 지도를 그리며 다시 만나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