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이야기
설득할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2024년 디지털 아카이브구축사업 공유회
지난해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내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광주 뿐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내 두 개의 질문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의 말은 기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데요.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명제를 피부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과거로부터 이어온 유산인 ‘기록’으로 가능합니다.
기록은 증거가 되고,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되며, 어떤 움직임을 추동할 힘이기도 합니다.
사실이 왜곡되고, 부정의가 판치는 작금의 현실에서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선 우리는 기록을 잘 남겨야 합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책임’을 갖기 때문이죠.
‘여성공익단체 역량강화를 위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사업’은 세상을 바꿔온 여성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며 다른 변화를 꿈꾸기 위해 시작하였습니다.
2023년부터 2년간, 6개의 단체 기록들을 정리하며 우리 사회의 성평등을 위해 활동한 여성들의 경험과 기록이 더 많은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아카이브 페이지와 여성운동위키를 만들었습니다(아래 이미지 클릭).
여기에는 1990년대 여성동인들의 평등을 향한 열망, 판문점을 넘나드는 여성평화걷기, 2010년대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불처벌하는 아청법 개정까지 여성공익단체들이 국내외를 넘나들며 치열하게 분투해온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 여성공익단체 아카이브와 여성운동위키
: 또하나의문화-막달레나공동체-십대여성인권센터-여성문화네트워크-울산YWCA-평화를만드는여성회 순)
그리고 지난해 11월에는 ‘여성운동의 기억 그리고 변화: 함께 기록하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여성운동공유회가 열렸는데요. 이 시간은 남아 있는 여성운동의 역사를 함께 나누며, 6개 단체의 기록에 우리의 기억을 더해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공유의 장이었습니다.
첫 번째 기조강연으로는 페이퍼백 아카이브 허나윤 대표님께서 도시재생계획 등과 관련된 성매매집결지 아카이브와 일본군 ‘위안부’ 등 ‘생존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Post Survivor Era)’에 어떻게 기록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나눠주셨습니다.
두 번째 기조강연은 아카이빙네트워크연구원 손동유 원장님께서 가치 있는 기록의 ‘가치’를 정하는 일에 대한 질문과 함께 아카이브의 역사와 학교 교육 활용방법 등을 소개해주셨고, ‘아카이빙이 향해야 할 곳은 기록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귀중한 말씀 전해주셨습니다.
또하나의문화, 막달레나공동체, 십대여성인권센터, 울산YWCA, 여성문화네트워크, 평화를만드는여성회는 세션별로 단체 이야기를 전하며, 마치 한 편의 인문학 강의 같았는데요. 단체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한국여성재단 유튜브(클릭)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시민 분들은 온오프라인으로 목소리를 모으며, 나에게 영향을 준 여성운동을 떠올리고 다른 기억들에는 공감과 연대를 표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하였습니다.
“전국적 딥페이크 범죄 사건을 보고, 지금의 여자애들을 이런 세상에 살게 만든게 저의 침묵 탓이라는 죄책감이 들어 혜화역 엄벌촉구 시위에 나간 것이 첫 시작입니다. 다수의 성범죄 피해자로서, 성차별과 여성혐오 사회 속에 홀로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여성들도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같은 분노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무섭지 않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분명히 압니다.” (jyk9453)
“한국 여성운동 역사는 성평등 사회를 위해 계속 투쟁하는 모든 이에게 영감과 교훈이 될 것입니다.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은 미래 세대을 위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ch2001)
한국여성재단에서는 여성운동을 설득력 있게,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방법도 함께 고민했는데요. 페미니스트 연구웹진 Fwd의 필진이자 ‘쉽고 재미있는 지식 플랫폼’ 뉴닉(NEWNEEK)에서 에디터로 근무하는 송유진 선생님을 모시고 강의를 열었습니다.
‘대중 대상 페미니즘 콘텐츠 만들기의 기쁨과 슬픔 ☀️☔’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강의에서, 송유진 선생님은 콘텐츠를 만들 때의 기준과 핵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콘텐츠를 쓰기 전에 네 가지를 먼저 기억해주세요. 첫째, 중학생 독자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친밀한 언어. 둘째, 스로리텔링을 통한 흥미 유발. 셋째, 새로운 관점의 제시. 넷째, 독자가 자연스럽게 떠올릴만한 질문들로 직관적인 글을 구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강의 내용 중 일부)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은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요?
그 기억은 기록으로 남아 있나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기록을 지키고 알려야 할까요?
‘설득할 책임을 진다는 것’에 생각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