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이야기
공간의힘, 변화의 힘, 사람의 힘-대전열린가정폭력상담센터
공간에 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간에 인연을 만들고,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대전열린가정폭력상담센터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전열린가정폭력상담센터는 대전 동구 성남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낮은 담장으로 어깨동무한 골목 따라 이리저리 걷다보면 문득 마주친다. 찾아가는 길이 정말 그렇다. 성남동 주민센터를 목적지로 두고 근처 골목을 이리저리 걷다보면 만나게 된다. 작고 오래된 동네다 보니 길을 해매일 일도, 잃을 일도 없다. 상담센터는 그 골목 어디쯤 자리하고 있었다. 2001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골목과 어울려 지냈을 센터, 그래서일까? 특별할 것 없는 수더분한 외관이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안내를 받아 올라간 곳은 2층 교육장이었다. 첫 방문이라면 조금 놀랄 수도 있겠다. 이 교육장이 센터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선 기대하지 못할법한 비주얼(?)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우선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바닥과 외벽이 훤해서 눈이 시원했다. 천장엔 시스템 에어컨과 빔 프로젝트가 단정하게 달려 있었고 교육장 안쪽엔 작지만 세련된 홈바가 있어 다소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아기자기함까지 더하고 있었다. 대전열린가족폭력상담센터는 3번의 고배를 마신 후에야 작년 공간문화개선사업에 선정됐다. 김순란 부소장은 선정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울었다. 그가 부족한 인력에 시달리면서도 밤을 새워가며 신청서를 쓴 이유가 있었다. 간절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사연 때문이다. “상담센터에 오시는 분들은 대게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어요. 가정폭력, 불화에 시달리다 보니 마음이 어지럽고 우울한 분들이 많이 오시죠.이런 분들과 함께 치유의 시간을 갖고 상담을 하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육장 자체가 우리의 열악함이 여실히 보이는 공간이다 보니 오시는 분들이 집중하기도 어렵고 저희도 너무 미안했죠.”(김순란 부소장) 누수에 천장은 내려앉았고 오래된 벽지와 바닥이 더없이 칙칙했었다. 하다못해 빔 프로젝트를 한번 쓰려면 의자를 두 개씩 겹쳐 올려야 겨우 사용이 가능할 정도였다. 상담의 전문성과 수준 높은 치유프로그램, 자원 활동가들의 열정 등 모든 걸 갖고 있었지만 정작 공간이 엉망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간이었기에 앉을 자리를 비롯해 조명 등 아주 사소한 것도 신경 쓰고 싶었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before | after |
대전열린가족폭력상담센터는 1년에 1800건의 상담이 이루어질 정도로 내담자의 방문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 그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고 무너진 가정과 자신을 추스르는 힘을 얻어갔다. 거기에 더해 이곳 센터가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담자로 방문했다가 이제는 가족상담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내담자의 삶 자체를 바꿔놓는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제가 우리 집에서 제일 우울한 사람이었어요. 엄마인 제가 우울하니 가족 분위기가 엉망이었죠. 사는 게 짐스러웠는데 여기 와서 많이 내려놓았어요. 집이 금산인데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와요. 친정에 오는 기분이거든요. 마음이 편해지고 잡념이 없어져요.”(김민수 자원활동가) 내담자로 방문했던 김민수 활동가는 내친김에 작년 가족상담 자격증을 땄다. 상담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삶의 진로까지 새로 생긴 셈이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센터방문을 추천을 하고 싶었지만 교육장의 열악한 환경이 괜히 마음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공간개선사업 이후 그런 부담이 없어졌다. 세련되고 깔끔한 공간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어서 요즘은 여기저기 알리고 다니느라 바쁘단다. 온돌공사가 된 덕분에 바닥에서 춤을 추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게 됐고 참가자들이 프로그램 후 다 같이 드러누워 한숨 자기도 한단다. 어린 아이들을 떼놓고 오기 힘들었던 엄마들의 반응도 좋다. 엄마가 상담 받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서 자거나 놀 수 있어서 마음 편히 데리고 올 수 있게 됐다.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여성들의 공간 자체를 바꿔주는 일이 쉽지 않아요. 그래도 앞으로 이런 공간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안정감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거든요.”(김순란 부소장) 공간에 변화의 힘이 더해지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인연이 이어졌다. 그만큼 서로 나눌 위로와 사랑의 크기도 커졌다. 그 사랑으로 힘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 공간으로 모인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이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나눠준다. 그렇게 대전열린가정폭력상담센터는 공간의 힘을, 변화의 힘을, 사람의 힘을 계속 키워나가는 중이었다. 공간의 힘, 변화의 힘, 그리고 사람들의 힘. 대전열린가정폭력상담센터에는 따듯한 힘의 선순환이 매일매일 이뤄지고 있었다. 원을 그리며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이곳의 사랑이 끝내 폭력으로 인한 모든 이들의 상처를 품에 안아 주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글 ㅣ 이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