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이야기
그곳에 가면 사또가 있다_십대여성인권센터
“사또요?”
그곳에 가면 ‘사또’가 있으니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내 귀를 먼저 의심했다. 때가 어느 때고 시대가 어느 시댄데 원님을 만나보라 하는가 싶었다. 전화통화 중 들은 얘기였으니 내가 뭔가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역시 ‘사또’란다.
그렇게 내가 사또를 만나러 찾아간 곳은 십대여성인권센터(http://www.10up.or.kr/). 서울 당산동에 위치해 있다. 2015년 공간문화개선사업에 선정됐고 상담실과 야외 테라스, 싱크대 공간 등이 새로 생기거나 단장됐다. 입구에서 노크 후 몇 걸음 걸어 들어가니 공간 여기저기서 얼굴들이 나타난다. 첫 만남에 어색한 건 나뿐인지 다들 반가운 얼굴을 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 얼굴들 중 ‘사또’가 있었다. 물론, 우리가 어쩐지 떠올리게 되는 고을 원님의 이미지는 없었다. 사또는 ‘사이버 또래상담원’의 귀여운 준말이었다.
지영(가명)씨는 올해로 사또 2년차의 베테랑 상담원이다. 사또는 인터넷 사이트 또는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출 또는 성매매를 하고 있거나 이미 경험한 여자 청소년을 찾아 상담을 하고 그들이 필요로하는 지원기관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성매매 거래가 오가는 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신고하는 일도 사또의 몫이다. 성매매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 성매매 거래를 모니터링 하는 일을 담당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또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청소년들의 또래라는 것, 그리고 본인의 경험이 상담의 바탕이 된다는 것. 그래서 청소년들이 유독 사또들의 상담에 마음을 많이 연다고 한다. 지영 씨 활약에 센터를 직접 방문해 상담하는 친구들도 많다.
“친구들이 오면 먼저 이곳 상담실에서 대화를 시작해요. 여기서 상담하면 일단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몇 년 전 제가 상담하러 왔을 때는 상담실이 없어서 되게 어려웠어요. 아무리 센터 내라고 하지만 오픈된 공간에서 제 경험과 마음을 털어 놓기가 힘들잖아요. 근데 지금 오는 친구들은 적어도 누가 내 얘기를 들을까봐 눈치보는 일은 없으니까 좋아해요.”(사이버또래상담원 지영 씨)
공간개선사업에 선정되기 전까진 상담실이 없었다. 사무실 한 켠을 내어 상담공간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된 가림막도 없고 뻥 뚫린 천장을 공유하다보니 아무리 작게 속삭여도 소리는 새어나갔다. 상담실이 필요했다. 가능하면 독립된 공간으로, 이왕이면 밝고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실이었으면 했다. 이곳 센터의 상담실이 성매매 피해를 입었거나 성매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10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시선과 노출에 누구보다 예민한 아이들이기에 방음부터 외관 인테리어까지 보다 꼼꼼한 손길이 필요했다.
“어렵게 아이들을 만났는데, 막상 아이들이 와서 자기 얘기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카페 등지를 다니기도 했는데 카페 역시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 얘기가 들릴까봐 불안감이 심한 공간이잖아요. 심리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심리지원단을 구성해놓고도 정작 심리치료도 외부공간을 빌려서 해야 되니까 공신력도 떨어지고 여러 모로 고단했어요. 그때마다 우리한테 꼭 필요한 게 없구나 싶었어요. 상담실이 없던 거죠.” (권주리 사무국장)
[before] 오픈된 공간 | [after] 독립된 상담실 마련 |
그래서 없던 공간을 만들었다. 방음도 신경 썼고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내부공사도 마감했다. 이제 다만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 줬으면 하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라는 한계 때문에 여러 민간기관 문을 두드려 겨우 사업을 진행하고 십시일반의 후원으로 하루하루 운영을 이어나가지만 이곳이 전국을 통틀어 성매매 경험이 있는 십대들을 만나거나 지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운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활동을 멈출 수는 없다.
원래 센터는 대면상담 보다 위기 청소년들의 상황에 맞춰 각 전문기관에 연계해주는 일을 주로 했었다. 그러나 성매매 피해청소년들은 전문기관에 연계가 됐다가도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십대 청소년의 감수성과 이들이 겪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집중해 지원해줄 수 있는 기관이 마땅히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자꾸 돌아오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싶었어요. 우리의 역할이 직접 지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돌려보낼 수 없잖아요. 그중에는 몸이 안 좋거나 자살 위험이 있거나 하는 위급한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대면상담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의료, 법률, 심리지원단을 꾸려서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성매매 피해 아이들이 마음놓고 올 수 있는 곳이 센터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상담실을 꾸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죠.”(권주리 사무국장)
단순히 없던 상담실이 생긴 공간적 의미 말고도 십대여성인권지원센터의 상담실 자체가 갖고 있는 존재의 의미가 크다. 성매매 피해 아이들의 끝과 시작을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매매와의 고리가 끊어지는 끝의 공간이자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성매매 피해청소년이 사또가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상담소라고 하면 왠지 딱딱하잖아요. 고지식한 어른들만 있을 것 같고. 특히 성매매 피해청소년들은 자기들한테 피해를 입히는 어른들을 많이 겪었을 터라 어른에 대한 반감이 있어요. 근데 센터에 와서 우리를 지켜주려는 어른들도 있고, 감싸주려는 공간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여기서는 나도 상담을 해줄 수 있구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이버 또래상담원에 지원했어요. 이젠 제가 상담사가 되어 상담실에 들어온다는 게 되게 마음이 뿌듯해요.” (사이버 또래상담원 지영 씨)
상담실이 피운 사또라는 꽃이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찾아 열심히 꽃씨를 뿌리고 있다 생각하니 고맙고 든든할 수밖에. 어쩌면 내가 상담실이라는 작은 공간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센터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상담실은 찾아오는 모든 아이들을 진심으로 그러안을 만큼 그 품이 넉넉했기에, 그리고 그곳에서 아픔과 위기를 극복하고 당당히 제 삶을 살아가는 사또들의 눈부신 성장이 있었기에 감히 기대와 낙관을 걸어 본다. 글 ㅣ 이소망
“사또요?”
그곳에 가면 ‘사또’가 있으니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내 귀를 먼저 의심했다. 때가 어느 때고 시대가 어느 시댄데 원님을 만나보라 하는가 싶었다. 전화통화 중 들은 얘기였으니 내가 뭔가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역시 ‘사또’란다.
그렇게 내가 사또를 만나러 찾아간 곳은 십대여성인권센터(http://www.10up.or.kr/). 서울 당산동에 위치해 있다. 2015년 공간문화개선사업에 선정됐고 상담실과 야외 테라스, 싱크대 공간 등이 새로 생기거나 단장됐다. 입구에서 노크 후 몇 걸음 걸어 들어가니 공간 여기저기서 얼굴들이 나타난다. 첫 만남에 어색한 건 나뿐인지 다들 반가운 얼굴을 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 얼굴들 중 ‘사또’가 있었다. 물론, 우리가 어쩐지 떠올리게 되는 고을 원님의 이미지는 없었다. 사또는 ‘사이버 또래상담원’의 귀여운 준말이었다.
지영(가명)씨는 올해로 사또 2년차의 베테랑 상담원이다. 사또는 인터넷 사이트 또는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출 또는 성매매를 하고 있거나 이미 경험한 여자 청소년을 찾아 상담을 하고 그들이 필요로하는 지원기관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성매매 거래가 오가는 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신고하는 일도 사또의 몫이다. 성매매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 성매매 거래를 모니터링 하는 일을 담당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또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청소년들의 또래라는 것, 그리고 본인의 경험이 상담의 바탕이 된다는 것. 그래서 청소년들이 유독 사또들의 상담에 마음을 많이 연다고 한다. 지영 씨 활약에 센터를 직접 방문해 상담하는 친구들도 많다.
“친구들이 오면 먼저 이곳 상담실에서 대화를 시작해요. 여기서 상담하면 일단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몇 년 전 제가 상담하러 왔을 때는 상담실이 없어서 되게 어려웠어요. 아무리 센터 내라고 하지만 오픈된 공간에서 제 경험과 마음을 털어 놓기가 힘들잖아요. 근데 지금 오는 친구들은 적어도 누가 내 얘기를 들을까봐 눈치보는 일은 없으니까 좋아해요.”(사이버또래상담원 지영 씨)
공간개선사업에 선정되기 전까진 상담실이 없었다. 사무실 한 켠을 내어 상담공간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된 가림막도 없고 뻥 뚫린 천장을 공유하다보니 아무리 작게 속삭여도 소리는 새어나갔다. 상담실이 필요했다. 가능하면 독립된 공간으로, 이왕이면 밝고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실이었으면 했다. 이곳 센터의 상담실이 성매매 피해를 입었거나 성매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10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시선과 노출에 누구보다 예민한 아이들이기에 방음부터 외관 인테리어까지 보다 꼼꼼한 손길이 필요했다.
“어렵게 아이들을 만났는데, 막상 아이들이 와서 자기 얘기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카페 등지를 다니기도 했는데 카페 역시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 얘기가 들릴까봐 불안감이 심한 공간이잖아요. 심리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심리지원단을 구성해놓고도 정작 심리치료도 외부공간을 빌려서 해야 되니까 공신력도 떨어지고 여러 모로 고단했어요. 그때마다 우리한테 꼭 필요한 게 없구나 싶었어요. 상담실이 없던 거죠.” (권주리 사무국장)
[before] 오픈된 공간 | [after] 독립된 상담실 마련 |
그래서 없던 공간을 만들었다. 방음도 신경 썼고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내부공사도 마감했다. 이제 다만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 줬으면 하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라는 한계 때문에 여러 민간기관 문을 두드려 겨우 사업을 진행하고 십시일반의 후원으로 하루하루 운영을 이어나가지만 이곳이 전국을 통틀어 성매매 경험이 있는 십대들을 만나거나 지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운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활동을 멈출 수는 없다.
원래 센터는 대면상담 보다 위기 청소년들의 상황에 맞춰 각 전문기관에 연계해주는 일을 주로 했었다. 그러나 성매매 피해청소년들은 전문기관에 연계가 됐다가도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십대 청소년의 감수성과 이들이 겪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집중해 지원해줄 수 있는 기관이 마땅히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자꾸 돌아오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싶었어요. 우리의 역할이 직접 지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돌려보낼 수 없잖아요. 그중에는 몸이 안 좋거나 자살 위험이 있거나 하는 위급한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대면상담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의료, 법률, 심리지원단을 꾸려서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성매매 피해 아이들이 마음놓고 올 수 있는 곳이 센터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상담실을 꾸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죠.”(권주리 사무국장)
단순히 없던 상담실이 생긴 공간적 의미 말고도 십대여성인권지원센터의 상담실 자체가 갖고 있는 존재의 의미가 크다. 성매매 피해 아이들의 끝과 시작을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매매와의 고리가 끊어지는 끝의 공간이자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성매매 피해청소년이 사또가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상담소라고 하면 왠지 딱딱하잖아요. 고지식한 어른들만 있을 것 같고. 특히 성매매 피해청소년들은 자기들한테 피해를 입히는 어른들을 많이 겪었을 터라 어른에 대한 반감이 있어요. 근데 센터에 와서 우리를 지켜주려는 어른들도 있고, 감싸주려는 공간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여기서는 나도 상담을 해줄 수 있구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이버 또래상담원에 지원했어요. 이젠 제가 상담사가 되어 상담실에 들어온다는 게 되게 마음이 뿌듯해요.” (사이버 또래상담원 지영 씨)
상담실이 피운 사또라는 꽃이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찾아 열심히 꽃씨를 뿌리고 있다 생각하니 고맙고 든든할 수밖에. 어쩌면 내가 상담실이라는 작은 공간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센터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상담실은 찾아오는 모든 아이들을 진심으로 그러안을 만큼 그 품이 넉넉했기에, 그리고 그곳에서 아픔과 위기를 극복하고 당당히 제 삶을 살아가는 사또들의 눈부신 성장이 있었기에 감히 기대와 낙관을 걸어 본다. 글 ㅣ 이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