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이야기
[만나고싶었습니다] 이주환 원장,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꿈꾼다
올해 만 50세가 된 나는 공부하기에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 입학했다. 매주 수요일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주말에는 거의 쉬지 못하고 교과과정 텍스트를 읽거나 숙제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누군가가 “요즘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으면 솔직히“아주 좋아, 편안해”라고 말하긴 힘들다. 하반기 들어서 점점 일이 바빠지다 보니 슬슬 체력의 한계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고 청탁에 선뜻 응한 것은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실천여성학과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물론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도전이다. 그러나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2년차 활동가의 새로운 도전
경험과 현장성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이론을 소홀하게 생각한 경향이 있었다. 특히 내가 활동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 일하는여성아카데미는 비정규직과 빈곤여성 등 기층여성들을 위한 활동을 주로 하다 보니 페미니즘 이론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또한 하는 일이 워낙 바쁘다보니 이론적인 내용을 학습하고 공부하는 것은 엄두를 못 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한 충분한 이론 학습 없이 그렇게 하루 이틀 일하다 보니 몇 년 전 부터는 가지고 있던 자원을 다 꺼내 쓴 느낌이 들었고, 어느덧 22년차 활동가가 되었다.
3년 전부터‘여성사회의식 연구팀’을 만들고 학습도 해오고 있었지만 활동가끼리 하는 공부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한 선배가 ‘실천여성학’공부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기쁘게 받아들였다. 너무나 오랜만에 제도권 공부를 하는 것이라 ‘잘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일단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실천여성학과 면접을 위한 자기소개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활동해 왔던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현장연구계획서를 쓰면서 공부에 대한 마음도 다져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1학기 과정을 시작하였다. 1학기 과정에서 배운 세 과목은 다 재미있었지만 특히 ‘페미니즘 사상’과목에서 ‘나의 페미니즘’을 주제로 활동을 정리해보고 공유하는 자리가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의 허스토리를 들으면서 서로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페미니즘 사상의 맥락에서 나의 활동을 조망해 보고 스스로 분석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여성의 삶이 곧 페미니즘 교과서
최근에는 여성학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우고 익힌 내용들을‘여성사회의식연구팀’에서 함께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런 과정은 나에게 참 보람 있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나는 이런 학습공동체를 더 많이 확장하고 싶다. 특히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거나 책 읽기가 어려우신 여성조합원들이나 중장년층도 함께 학습할 수 있는 방법론도 개발하고 싶다. 페미니즘 학습은 20~30대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고, 저학력 층의 경우는 너무 어려워하기도 하고 중장년층의 경우는 자신이 이미 어려운 고비를 다 넘겨왔기 때문에 페미니즘 학습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삶 자체가 페미니즘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페미니즘이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갖게 해주고,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층이나 세대를 넘어 학습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본다.
나, 조직, 사회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유대와 연대를 통해 인간에 의한 모든 억압과 차별, 착취를 종식시키고 평화로움과 따뜻함을 만들어 가는 꿈을 상상해 본다. 한국여성재단 장학금 지원 덕분에 나는 다시 꿈꾸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글 : 이주환(일하는여성아카데미 원장, 미래여성NGO리더십과정 10기)_출처: 딸들에게희망을 2016년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