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이야기
여성들이 와글와글 모여 삶의 희망을 꿈꾸는 곳, 와글밥_경주여성노동자회
“와글밥은 휴식 같은 공간이에요. 힘들 때 나도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안심이 되어주는 공간이지요. 그런 와글밥이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기뻐요.”(최기선 회원) 동네 마실 나오듯 퇴근길에 들렀다는 최기선 회원은 경주여성노동자회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었다. 경주시 외곽 월 5만원의 세를 내던 공간에서부터 함께해 시내 한 가운데 자리 잡기까지 경주여성노동자회의 역사를 지켜본 증인과 다름없었기에 지금의 변화가 더 감격스럽다 했다. 경주여성노동자회의 다른 이름이자 공간의 이름이기도 한 와글밥은 2000여권의 책을 갖춘 작은 도서관이기도 하면서 중고제품 나눔장터에, 친환경 EM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상설매장을 겸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수시로 열리고 위기여성 긴급상담과 지진교육도 한다. 최저임금 인상 및 옥시제품 불매 캠페인이 열린 곳도 이곳 와글밥이다.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 와글밥의 활동이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겨우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교육이라도 있는 날엔 책과 자원들을 죄다 뒤로 미뤄놓고 겨우 공간을 만들어 진행했다가 다시 복원하고를 반복했죠. 제일 어려웠던 건 상담이에요. 하루 종일 바깥에서 시달리다가 잠깐이라도 마음을 쉬고 싶어 방문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방해받지 않고 편히 쉴 공간이 없어 속상했죠.” (윤명희 대표) 협소한 공간에 숨통이 트인 것은 올 3월이다. 원래 한 공간이었던 곳을 와글밥과 나눠 사용했던 학원이 문을 닫자 급히 전세금부터 빌려 학원자리를 잡았다. 월세가 걱정이었지만 활동가들의 활동비를 십시일반 모아서 버텨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2017년 공간문화개선사업에 선정됐다. 재정이 어려워 공간을 꾸밀 생각은커녕 필요한 집기조차 구매하기 어려웠을 때니 꿈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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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개선사업을 통해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어 기쁜 마음도 있지만 우리들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뿌듯함이 있어요. 와글밥의 활동을 인정해준다는 느낌도 받고 자부심도 생기고요.” (김정순 회원) “개선된 공간에서 비폭력대화, 면생리대 강좌도 있었고요, 그 전 공간에서 작업하기 힘들었던 비누공예나 발효액 만들기도 이젠 쾌적한 환경에서 할 수 있게 되니 더 힘이 나는 것 같아요.” (박금숙 회원) 공간문화개선사업으로 교육장과 상담실이 생긴 와글밥은 활기가 넘쳐났다.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을여성들의 활동도 덩달아 분주해졌음은 물론이다. 기존에 하고 있던 자원나눔, EM제품 만들기 외에도 한부모 가정 지원 활동에 힘이 생겼고,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한 몫을 단단히 할 생각이다. 처음부터 활동의 스펙트럼이 넓었던 것은 아니다. 와글밥이라는 공간에 자주 모이다 보니 함께 할 일들이 눈에 보이고 용기도 생겼다. “이 동네에서 와글밥에 대한 소문이 있어요. 일단 오면 즐겁다는 소문인데, 그 얘기를 듣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와서 엄마들끼리 밥도 해먹고 수다도 떠는 일 자체가 우선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저도 처음엔 이끌려 왔지만 3년 동안 꾸준히 활동하며 자발성도 높아지고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박혜경 회원) “와글밥에 오기 시작하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하게 됐어요. 직접적인 사회참여를 하게 됐고 할까요? 주부로만 지내던 때에는 원전반대 캠페인이나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은 생각하지도 못했었죠. 전에는 사회문제를 소극적으로만 바라보고 수동적인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인식변화가 생긴 거죠.” (김명화 회원) 와글밥을 단순히 마을여성들의 소규모 작업장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인을 가정주부로만 생각했던 여성들이 스스로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나아가 지역 내 여성인권, 여성노동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단위로 성장한 것이다. 여기에 공간개선까지 더해지며 이용자들의 의욕이 더욱 커졌다. “이렇게 좋은 공간을 비워두면 아깝잖아요. 앞으로 와글밥 회원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든 공간을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뜨개질 모임도 좋고, 독서토론도 좋고요. 마을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곳으로도 활용했으면 해요.” (박금숙 회원) 여성들이 와글와글 모여 삶과 노동의 희망을 꿈꾸는 풍경. 경주여성노동자회의 별칭인 와글밥의 뜻이 이렇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앞으로의 공간 활용을 묻는 말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가장먼저 나왔다. 어쩐지 그 답이 큰 욕심 같지는 않다. 취재차 들렀던 잠깐의 방문에서도 와글밥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와글와글 모인 여성들의 수다와 소란이 마을로, 지역으로 흘러가 여성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곳 와글밥이 길이 되고 문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저 묵묵한 응원을 보내본다. 글ㅣ 이소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