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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젠더폭력·기후정의·이주인권…멈추지 않는 여성운동, 3년의 버팀목이 되다

2026.06.22

한국여성재단 주최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 성과공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젠더폭력 해결부터 기후정의 실현까지, 전국 여성운동 현장에서 분투해 온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 전국에서 온 활동가들이 둘러앉았다. 부족한 예산과 인력, 치솟는 공간 임대료 등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어떻게 운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함께 머리를 맞댔다.

한국여성재단이 2023년부터 3년간 펼쳐온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브레이브 체인지스)를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지속 가능한 성평등 증진과 미래지향적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을 위한 중·장기 지원 프로젝트다. △미래지향적 성평등 증진을 위한 어젠다 개발 및 확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단체를 돕는 ‘여성운동 지원사업’ △인건비·사무실 운영비 등을 지원해 조직 내실 다지기를 돕는 ‘코어 지원사업’ △여러 단체 간 연대·협력을 도모하는 ‘콜라보 지원사업’ △활동가 쉼 지원사업 △기획지원으로 3년간 3·8 세계여성의날 한국여성대회 지원 △그 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여성노동자회 11개 지부 등 지원사업을 통해 3년간 총 74개 단체에 약 10억원을 지원했다. 

한국여성재단 주최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 성과공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활동을 3년 연속 돕는 ‘여성운동 지원사업’에 참여한 단체는 다섯 곳이다. 서울여성회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0주기를 맞아, 바닥에 누워 폭력에 항의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전국 곳곳에서 60여 회 열었다. “누우려고만 하면 비가 양동이로 쏟아졌”지만, 우비를 입고 하나둘 모여든 페미니스트들, ‘강남역을 잊지 않겠다’는 서명에 참여한 시민 1만여 명이 함께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촉발한 여성들의 행동의 의미와 10주기 추모행동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날 강남역에서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 중이다.

여성환경연대는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분류하는 선별장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조사해 알렸다. 사측 아니냐며 경계하던 노동자들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열악한 노동환경, ‘혐오시설’ 노동자라는 낙인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민들의 감사 손편지를 전달받고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화답한 노동자들도 있다. 안현진 활동가는 “당장 정책을 바꾸지 못해도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도 소중한 일”이라고 밝혔다.

젠더교육플랫폼 효재는 성평등 교육에 대한 반발(백래시) 속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강사 양성 연수를 운영했다. 박현이 이사는 강사가 설명하는 대신 참여자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방식이 효과가 좋았다고 했다. 대학 내 교제폭력 예방 교육을 위해 거창한 변화보다 “우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든” 사례, 군대·노동조합·초등학교 등 여러 현장의 위계를 돌아보게 한 사례도 소개했다. 앞으로도 “강사와 활동가들에게 힘이 되는 사례 공유 체계를 이어가고, 서로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지속하는 것”을 과제로 꼽았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n번방 방지법’ 시행 이후 온라인 플랫폼 회사들이 책임을 제대로 지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피해 영상물을 하나하나 삭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묻는 운동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이효린 사무국장은 사업 기간 담당자가 대여섯 번 바뀌었다며 “그 모든 활동가들의 드나듦 속에서 사업을 완성했다”고 감사를 전했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사업비가 따로 나오지 않는데도 자발적으로 자료집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참여한 시민들의 언어를 만나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혁명적 사랑—우리의 돌봄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를 내걸고, 돌봄에 대한 인식 변화 캠페인을 펼쳤다. 류형림 팀장은 시민 1000명 대상 설문에서 304명이 “돌봄은 사랑”이라 답한 결과를 토대로, 우리 누구나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사회의 기본 원리로 삼는 ‘돌봄 중심 사회’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청소년·장애인을 돌봄의 ‘주체’로 세운 전시와 캠페인을 통해 3년간 약 49만 명에게 이 메시지를 전했다. 전시 개막식에서 발달장애 청년·장애인 댄스팀과 참여자들이 함께 훌라 춤을 추던 장면을 가장 인상 깊은 순간으로 꼽았다.

한국여성재단 주최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 성과공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한국여성재단 주최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 성과공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외국인이라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고 거액의 병원비를 내야 할 위기에 처한 이주여성을 이 사업을 통해 도운 사례도 있다. 대구에서 이주여성 인권 보호 활동을 펼쳐 온 ‘이주와가치’의 한 활동가는 “치료받은 이주여성은 청소노동자였는데, ‘내가 가장 잘하는 일로 보답하고 싶다’며 단체 사무실 청소와 이사 후 서류 정리도 함께해 주셨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이주여성은 도움만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크지만, 한국 사회도 이분들의 노동에 기대고 있고, 이분들 역시 존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활동가들은 인건비·운영비 지원이 단체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구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윤석열 정부 때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전액 삭감됐던 상황에서 “재단의 지원 사업이 든든한 안전망이 됐다”고 했다.

서울동북여성민우회 박정민 활동가는 “부족한 예산과 적은 사람,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버틸까가 고민이던 때 이 사업이 버티는 힘이 됐다”고 했다. “남은 건 사람이에요. 사람 사이의 연결이 단체를 지속시키고, 그 힘이 다른 지역으로 번졌죠.”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콜라보 지원으로 부산·양산·진주의 이주여성 단체들과 연대한 경험을 나누며 “서울과 지방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사업을 더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여성재단 주최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 성과공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한국여성재단 주최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 성과공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3년간 74개 단체를 찾아다니며 심사와 컨설팅을 맡은 배분위원 세 명도 무대에 올랐다. 강혜란 위원이 단체들을 처음 찾던 2024년 봄은 지역 성평등 기금마저 끊기고 현수막조차 제대로 걸기 어렵던 때였다. 손목에 깁스를 한 채 혼자 바자회를 열어 500만원을 벌었다고 자랑하던 1인 활동가, 겨울철 자금난을 운영위원들의 사비로 근근이 버티는 단체들도 만났다.

“단체들의 형편이 불안정하다 보니 20대 활동가가 들어와도 오래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천만 해도 서울로 옮겨가기 쉽다 보니 지역에 남으려는 사람이 적었고, 운영진 전체가 고령화돼 앞날을 잇기 힘든 단체도 많았어요.”

이미경 위원은 현장에 이런 지원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짚었다. “활동가들은 이 사업을 ‘어디에도 없는 지원’, ‘산소호흡기’, ‘가뭄의 단비’라 표현했습니다. 1000만 원 안팎의 돈이 단체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여성운동 현장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줍니다.” 또 “성평등 정책이 뒷걸음치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은” 활동가들의 끈질김을 가장 큰 자산으로 꼽았다.

홍미희 위원은 이 사업이 재단의 오랜 원칙을 깬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재단은 한정된 돈을 여러 단체에 고루 나누고, 단체 운영비보다는 특정 사업에 지원하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섯 단체를 3년 연속, 재단 역사상 가장 큰 금액으로 지원했고, 운영비를 100% 대는 일도 처음이었어요. 단체끼리 배우고 연대하는 것 자체를 돕는 콜라보 사업도 새로웠죠. 재단으로서도 용기 있는 도전이었습니다.”

관건은 여성운동 전체가 오래 버틸 수 있는 ‘터전’을 키우는 일이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처럼 문을 닫은 곳도 있었지만, 그 활동가들이 운동판을 떠나지 않고 다른 단체에서 다시 일하는 모습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돌아오는” 회복력을 봤다. 강 위원은 “이 사업이 계속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재단 주최로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시작점에서 열린 여성운동 생태계 조성사업 ‘Brave Changes’ 성과공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여성재단 제공

노지은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은 “이번 사업은 여성재단 입장에서도 기존 배분 원칙과 맞지 않거나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방식이었기 때문에 굉장한 실험이었다”라며 “후원처와의 신뢰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단체들이 저희를 믿고 함께했기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여성재단도 여성운동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실험으로 삼고 싶었다. 하나하나의 프로젝트 지원을 넘어, 여성단체의 활동과 여성운동이 어떻게 지속되고 강화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혐오와 백래시가 일상이 되고, 성평등 정책의 후퇴를 경험하며, 활동가들의 소진과 조직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성운동은 늘 그래왔듯이 위축되기보다 더 넓은 연대와 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또 “여성운동은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연결해 온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연대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라며 “우리의 용기가 앞으로의 여성운동 생태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8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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