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보도
  • 언론보도

[오마이뉴스] ‘영원한 여성활동가’ 박영숙 10주기 기념 _ ‘거룩한 바보들’이 움직이는 세상 이야기 5화

2023.06.01

박영숙과 살림정치

살림정치는 돌봄, 나눔, 살림을 수단으로 생명, 평등, 평화를 추구하는 목적

‘생을 마칠 때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어’했던 故 박영숙 선생은 1963년부터 2013년까지 약 50여 년간 여성 평화 환경 활동가로 살았다. 1960년대 기독교운동에서 80년대 여성인권, 90년대 환경운동으로, GO와 NGO의 경계를 넘어 여성운동과 평화운동, 환경운동과 국제운동, 재단 설립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과제를 끌어안고 끊임없이 활동의 영역을 넓혀갔다. ‘살림’은 박영숙의 평생의 과업이 담긴 말로, 정치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운동, 지구를 살리는 운동은 서로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여성조직을 만들었고, 정부조직에 목소리를 내었다. 박영숙은 현장에서 실천하는 여성활동가들의 거울이자 나침반이다. 2023년 故 박영숙 선생의 10주기를 맞이해 성평등과 생명, 평화, 살림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쳔했던 박영숙 선생의 삶과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기자말]

박영숙, 그는 한국의 전형적인 한 정숙하고 고귀한 ‘여성’이다. 그의 떨림 섞인 음성의 단호한 목소리가 시작되면, 그 안에는 문제의 분석이 명료했고, 대안이 분명했다. 모든 내용의 기반은 ‘성평등’이었다. 나는 논리적 사고에 매료되어 이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 긴 세월을 함께하지는 못했으나 그 떨림 섞인 음성에서 당신의 감정을 가두곤 했던 순간을 나는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이분을 존경했다.


2009년 10월 시민사회단체는 구태의연한 한국정치를 보다 못해, 한국사회의 ‘희망과 대안’이라는 새로운 시민정치운동을 시작했다. 이 조직에는 원로 어른들이 계셨는데 이미 잘 알려진 남성 여러분과 아울러 박영숙이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해 겨울, 내내 작고 큰 모임이 이어졌다. 어느 하루 선생님이 원로 모임에 불참하신다는 얘길 접하고 나는 의아해 물었다. 답은 짧았다. “남자, 자기들 얘기뿐이라서…”  

맑은정치여성기금운동본부 발대식. 2004년 2월 11일
▲  맑은정치여성기금운동본부 발대식. 2004년 2월 11일
ⓒ 한국여성재단


살림정치, 여성행동으로


같은 해 선생님은 살림이재단(이사장)을 역말 사거리에 세우셨고, 5층 공간은 모든 여성들의 광장으로 개방되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남성중심 사회에서는 대안은 없다고 보아 이미 준비를 해왔던 것 같았다. 그 해 연말 그 백김치로 유명한 한식 만찬을 계기로 하여 여성 살림정치의 미래가 시작됐다. 2010년 ‘살림정치 여성행동’이 문을 열었고, 그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살리는 정치가 회자됐다.


2011년 10월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살림정치 창립마당이 펼쳐졌다. 시민사회단체 등 200여 명이 모여, ‘정치를 살리고 바로 세우는데 여성들이 나서야 함을 선언했다. 살림정치 여성행동은 과감히 당시 서울시장 범야권 후보 박원순을 초청해 우리의 제안을 전달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반값 등록금과 함께 여성정책 과제를 요구했다. 이에는 ‘폭력 제로 마을 안전망 구축’, ‘취약계층 여성의 주거 지원’, ‘1080 생애주기별 여성 건강 지원체계 구축’ 등, 여성의 온전한 삶이 있는 대전환의 사회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살림정치’, 돌보는, 나누는, 살리는 정치


ad

우리 고유 언어인 ‘살림’은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집(가정)을 꾸려 나가는 일’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살림은 ‘죽임’의 반대말로 ‘살리다’의 명사형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성만의 몫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살림’의 어원을 세계적, 역사적 맥락으로 넓혀 볼 필요가 있다. 살림의 뜻은 라틴어의 오이코노미아(Oikonomia)와 같다.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가사 활동의 재정 관리의 뜻(household)을 갖고 있는데, 이에서 경제학(economics)의 개념이 파생되었다. 동방 정교회나 라틴 가톨릭 교회의 기초교육에서는 경제(oikonomia)를 제한된 자원(물질)을 잘 관리하는 것, 즉 ‘가정 관리’로 다루었다(박노훈, “신약성서 정치경제의 인류학적 탐색”, 2013, 한국민중신학회 스웨덴 위키피디아).


그러나 현재 경제의 의미는 살림의 논리가 아닌 시장 논리라는, 공동체가 배제된 극히 개인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원에서 본 것처럼, 원래의 경제는 공동체적인 삶을 기반으로 하여 삶을 유지,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는 공동체 내의 인간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전제하는데, 그 안에는 중요한 공동체적 가치관 즉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인권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의 자유는 이기적·개인적인 한계 내에 구속됨으로, 자유 본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등의 관점을 사회·문화화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으로 우리 헌법에서도 제11조 평등권이 제12조 자유보다 앞에 나온다. 다만 평등은 연대의식 없이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를 살림을 하듯 구성원의 다양성 존중, 양보와 설득을 통한 평화로운 합의과정을 항상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림을 재해석하면 여성 전담으로 비하되어온 살림살이가 경제의 근간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경륜을 가장 많이 쌓아온 여성이 세계 시장 경제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이다. 이러한 비판 중에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주도권을 의미하는 ‘경제’라는 용어를 아예 ‘살림’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경제학자 강수돌,

홍기빈이다. 홍기빈은 “‘살림살이’가 ‘(남을) 살린다’와 ‘(내가) 산다’는 두 뜻을 합쳐 놓은 것”으로, “돈벌이 경제학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홍기빈, 『살림 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2013, 지식의 날개).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살림’이나 ‘오이코노미아’ 개념 안에 생태학적 삶의 지향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가정 재원 관리나 지구촌의 제한된 자원을 관리한다는 기본 의미도 그렇지만, 이와 더불어 공동체에서의 돌봄은 자연과의 일치감을 내포한다. 철학자 정성훈 교수는 고대의 소크라테스 제자 크세노폰(Xenofon)의 ‘살림꾼(Oeconomicus)’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살림꾼은 “공동체들의 수직적 차이(위계질서)를 거부하며, 근면한 돌봄과 생태적 삶”을 추구한다. 또한 “오늘날 ‘좋은 삶(eu zēn)’을 위한 공동체는 폴리스(도시)를 기원으로 하는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오이코스(Oikos, 집)를 기원으로 하는 ‘살림 공동체'”라고 설명한다(정성훈, “‘좋은 삶’을 위한 공동체로서 살림 공동체”, 「시대와 철학」2020 제31권 3호(통권 92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pp182-216).


크세노폰의 살림꾼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의 접촉 속에서 인간의 몸도 단련된다고 보았다. 러닝머신 등에 의한 신체 단련이 아니라 오늘날의 유기농업 종사자들처럼 자연에서 건강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에서 평화는 자연스레 이어지는 또 하나의 가치이다. 집이란 안정과 평화 자체를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좋은 집’으로 상정한 스웨덴의 이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집’에서는 형제간의 갈등이나 차별을 사전에 예방하고 평화를 추구하여 통합사회를 이룬다. 스웨덴은 지속가능사회를 위해 오늘날 녹색국민의 집이라 한다.

 

한국여성재단 집중모금캠페인 100인 기부릴레이
▲  한국여성재단 집중모금캠페인 100인 기부릴레이
ⓒ 한국여성재단


살림정치 개념의 확대


우리나라에서 살림이란 개념을 정치사회적 맥락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80년대의 안병무 교수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안 교수가 운영하던 계간지 ‘현존(現存)’이 1970년대 독재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당한 후, 1987년 이후 출간한 새로운 잡지의 이름을 ‘살림’이라고 했다. 당시 안 교수는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의 투쟁이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여기에서의 ‘살림’은 ‘죽임’의 반대말로 이해됐다.


안 교수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가 당한 죽임과 1970~80년대의 수많은 죽임, 박종철, 이한열… 광주학살 등을 동일시하며, 이는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집단적 ‘죽임’으로, 남아있는 우리는 그 죽임의 목격자라고 했다(이태원, 세월호의 죽임, 산업현장의 죽임, 매해 2천여 명은 사회적 죽임이다.). 그는 부조리한 사회체제 속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 하는 현대인의 책임을 강조했다(안병무, ‘살림운동은 죽임의 세력과의 투쟁이다’, 심원 안병무 아키브).


시대적 차이를 감안하면서, 박영숙의 ‘살림’은, 안병무에 비해 좀 더 포괄적이다. 안병무가 사상가라면 박영숙은 실천가이다. 박영숙은 살리는 행위에 더하여 통치와 행정의 의미를 부여했으며, 그래서 ‘살림운동’을 ‘살림정치’로 발전시켰다. 살림정치는 돌봄, 나눔, 살림을 수단으로 생명, 평등, 평화의 가치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2010년 당시 죽어가는 정치사회문화에 하나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가 살리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살림)정치의 행위에서는 민주주의의 국민주권이 강조되며, 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주체의식을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박영숙의 살림정치 행동에서는 세 가지 분야를 분명히 했다. 한국사회가 해결해야만 하는 성평등, 지속가능사회, 그리고 남북갈등 해소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해결의 시작과 과정은 하나다. 성인지적 관점으로부터 시작하며 해결방식은 바로 살림정치 행동을 통해서이다. 또한 현대적 의미에서 살림정치야말로 인본주의와 생태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박영숙의 1990년 초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운영 시기부터 많은 글과 연설에서도 나타난다.

 

박영숙 선생이 2011년 네팔을 방문했을 당시 네팔 여성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  박영숙 선생이 2011년 네팔을 방문했을 당시 네팔 여성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영숙의 폭넓은 행동


박영숙의 이러한 예리한 관점은 아시아 취약 여성과의 연대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살림정치는 한국을 넘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 네팔 등지에서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을 설립한 계기가 됐고 아시아 지역과의 공정무역(예 : 페어트레이드 코리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선생님은 남북갈등 70여 년,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갈등의 연속은 성불평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평화와 안보 분야에 성인지적 관점으로 참여하였고, 평화운동을 살림정치의 과제로 삼았다. 또한 동북아 비핵화를 위한 민간대화 네트워크에 적극적 격려와 참여를 아끼지 않았다.


박영숙은 1978년 일찍이 ‘생명문화 창조운동’을 시작으로 근 30년 동안을 이 과제에 집착했다. 앞서가는 환경연구를 영국 유학에서 배운 뒤, 운동에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1992년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는 지구촌 관점과 지역에서의 실천이 강조된 것으로 세계 환경운동가들의 국제적 연결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


박영숙은 준비된 이론으로 이를 선도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의 지속가능위원회, 녹색서울시민위원회 등 공적인 대표직과 환경사회정책 연구소에서의 이론과 연구는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던 현장운동 즉, 여성과 환경을 잇게 했고, 개발도상국가 여성들과의 연대를 선보였다. 이러한 역할은 선생님 업적의 가장 빛나는 부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환경은 실천이다’를 확실히 했고 돌봄, 나눔의 살림정치의 연속이었다.


박영숙의 생애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비극과 이를 견뎌낸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 극복을 넘어 사회체제의 변혁을 주창했다. 박영숙은 이를 지도력 육성으로 발전시켰으며 세대간 연대를 추구했다. 그래서 더욱 성 주류화 관점이 살림정치의 기반으로 강건히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본다. 박영숙 자체가 성평등 운동이었기에 오히려 여성운동의 구체적 나열은 여기에서 생략한다.


종합하면 박영숙의 살림정치는 역사적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공동체 내의 관계를 중시했다. 그리고 모든 사회 문제 해법에는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중시했다. ‘참석했으면 끝까지, 중간에 나가는 일이 없다’ 이러한 박영숙의 근면한 고집은 한 번 먹은 생각은 실현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1999년 말, 2000년, 새 밀레니엄은 ‘양성평등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신념이 그 많은 어려움을 넘어 ‘여성재단’을 우뚝 서게 했고, 말년에는 살림이 재단으로 우리를 포용했다. 우리가 이렇게 매해 ‘살림이 상’을 중심으로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살림정치의 일면을 실현해 나가는 이유다.


작금의 공동체를 무시한 ‘자유’ 대신 평등의 가치를 전제한 자유를 살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지키는 일이며, 이를 위한 살림정치가 지금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다시 한번 살림정치 의미를 다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시민사회는 이제 좀 더 실용적 실천으로 어느 구석이든 바꾸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보이는 우리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우리를 찾아 포용적 연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본다. 

출처 : 오마이뉴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32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