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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풍향계/ 벗바리의 역할
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동양일보]최근 마음에 드는 우리말을 새로 배웠다.
‘벗바리’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보살펴 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영어로는 ‘a supporter’ 또는 ‘a backer’를 말한다. 일선에서 내려오는 나이가 돼서일까 요즘 이 단어에 마음이 끌린다. 직장에서도, 그동안 활동하던 단체나 네크워크에서도, 무대 뒤에서 선배로서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을 챙기고 응원하는 벗바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벗바리를 넘어서 사회적인 벗바리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멋지게 일하고 있는 곳이 민간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이다. W의 이니셜로 상징되는 한국여성재단은 1999년, 21세기를 살아가는 딸들이 맘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기금을 모으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성평등 세상으로 가기 위한 크고 작은 여성운동들을 지원하면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3월4일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도 한국여성재단은 부스 현수막에 ‘여성운동의 벗바리’라고 스스로 벗바리임을 소개했다.
여성운동이라고 하면 일부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이에 한국 최초 여성학 교수인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3.8 스토리 레터’를 통해 여성운동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여성운동’을 그려보면 많이들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 국회에서 법을 바꾸는 것,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떠올리실 것 같아요. 모두 여성운동이 맞습니다. 저는 여성운동을 큰 틀에서 정의하면 ‘여성들의 사회적 움직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성운동은 크게 사회적 변화를 위한 집단적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여성이 주체가 되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꼭 집단적 움직임일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여성주의 의식을 가지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출 수도 있죠. 그리고 여성주의 교육의 관점에서 엄마로서 교사로서 아이를 가르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교육하는 것 또한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여성운동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할 수 있어요.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여성운동을 하고 있고, 할 수 있습니다.”
3월8일 세계여성의 날, 벗바리를 자처하며 충북여성정책포럼의 일하는 후배들을 ‘번개팅’으로 불러 점심을 나눴다.
갑작스런 연락임에도 전·현직 임원중 9명이 달려왔다. 옷이나 스카프, 장식 등 보랏빛 드레스코드를 맞추고 온 후배들 중에는 장미꽃송이를 챙겨온 후배도 있었고 보랏빛 수국꽃다발을 가져온 후배도 있었다. 점심과 커피타임 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3월4일 한국여성대회에 다녀온 후배의 소감도 듣고, 2023년 3.8 세계여성의날 주제에 대해 토론도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올 세계여성의날 캠페인 테마는 ‘공정을 포용하라(EmbraceEquity)’이다.
‘공정(Equity)’을 내세운 이유는 ‘평등(Equality)’한 기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 즉 차이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공정의 시작이다. 평등이 키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받침대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공정은 키의 차이에 맞춰 받침대 높이를 달리해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결과가 평등해지는 것, 그것이 공정인 것이다.
후배들과 헤어지면서 생각했다. 벗바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또 내가 만나는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응원하는 일, 그리고 여성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 그렇게 나만의 방식을 찾는 일이다.
후배들과 헤어지자마자 장미꽃 한 송이를 보내듯 한국여성재단에 작은 돈이지만 기부를 했다.
출처 : 동양일보(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5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