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개선, 그 이후를 생각하다_ 동대전장애인성폭력상담소 공간문화컨설팅 현장

  •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공간문화개선사업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던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벌떡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은 벽을 두드리는가 하면 출입문 여닫기를 반복했고, 천장을 올려다보거나 팔을 휘저으며 실내를 걸어 다녔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꽤나 기이하게 보였을 자리, 동대전장애인성폭력상담소 공간문화컨설팅 현장이었다.


[사진] 공사 업체, 시설 담당자, 공간전문가가 만난 자리

 

한국여성재단과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함께하는 공간문화개선사업에 선정된 모든 시설은 공간컨설팅을 통해 개선공사에 적용될 최종도면을 확정한다. 컨설팅 현장을 단순히 도면을 확정하는 자리로 여기기 쉽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자리다. 실측된 공간의 조건과 시설의 요청, 그리고 공간전문가의 의견, 삼박자가 딱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는 공사가 가능한 현장의 조건이 가장 중요하고, 시설 담당자는 공간을 운영할 실무자로서 이런저런 요청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공간전문가는 현장의 조건과 시설의 요청을 두루 확인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공간 활용을 위한 도면을 제안, 조언한다.

[사진] 평면의 도면, 그 이상의 역동적인 논의 과정

평면의 도면을 앞에 두고 벌어진 대화는 그 어떤 대화보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이었다. 도면상으로는 볼 수 없는 공간의 뒷면이나 치수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휠체어 이동 동선이 논의됐다. 출입문의 위치와 새로 세워질 벽면의 자리까지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기 때문에 도면을 보다가도 벌떡 일어나 직접 손으로 문을 열어보고 벽도 두드려보고 하는 것이다.

컨설팅 현장에선 벽을 뜯어내고 다시 세우고, 없던 공간을 만들고 효율이 떨어지는 공간은 없애는 등의 대대적인 공사방향은 물론, 창문모양과 출입문 손잡이의 형태, 새로 놓일 테이블과 의자의 디자인까지 모두 논의사항이었다. 벽을 뜯거나 세워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출입문이나 가구의 모양 등은 다소 사소한 부분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컨설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 공간을 사용할 주 이용자의 특성에 맞는 가장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더구나 동대전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시설의 성격상 거동이 불편한 내담자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과 편의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래서 테이블은 모서리가 둥근 것으로, 의자는 바퀴가 없는 팔걸이의자로 결정됐다. 또한 휠체어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다른 시설보다 상담실의 면적을 더 많이 확보하고 휠체어 이용자가 직접 여닫을 수 있는 형태의 슬라이딩 도어를 배치하기로 했다.

휠체어를 탄 이용자가 문은 직접 여닫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공간전문가로 참여한 젠더공간연구소 장미현 소장의 의견이었다.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활동마저 제한해선 안 된다는 거였다. 그게 배려의 형태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이용자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소한이라도 확보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곳이 주는 안정감에 차이가 있다는 그의 의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 현재의 모습. 이 공간이 어떻게 바뀔까?

가끔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공사, 실무, 공간 세 전문가들이 모이다보니 각자가 생각하는 ‘더’ 좋은 공간에 대한 주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충돌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다. 전문가들이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감조차 최적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고 그 결과는 결국 이용자의 편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간문화컨설팅은 실측에 맞춰 가로세로 몇 미터짜리 공간의 도면을 뽑은 자리라기보다 공간개선 이후를 생각하는 유일한 자리다. 이용자들이 실제 방문했을 때 겪을 불편함을 미리 제거하고 고유의 역할과 목적에 맞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마지막 단계이기에 그 의미와 중요성이 남다르다. 컨설팅 현장에서 좀처럼 앉아있질 못하고 도면을 들고 서성이는 저들의 부산스러움이 ‘기이’하지 않고 ‘미더운’ 이유다.

 

글ㅣ 이소망

 

<저작권자© 한국여성재단> 2017/08/08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