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디자이너 이경래의 삶, 사람, 공간(소식지 No.131)
- 100인기부릴레이캠페인
글 백진영(홍보팀) 딸들에게희망을 No.131 보러가기
서교동 한국여성재단 건물을 들어서면 하얀 벽에 여성재단 로고가 보이고 유리벽 너머로 여성재단 초대 이사장 고 박영숙선생님의 책을 모아놓은 책장과 사진, 연보, 말씀 등이 벽에 붓꽃색으로 새겨진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을 기획하는데 참여한 이경래 디자이너는 올해 100인 기부릴레이 이끔이로도 벌써 3년째 참여했다.
박영숙홀과 공간디자인
이경래 디자이너는 최근 자발적 백수가 됐다. 월요일 오전에 만났음에도 얼굴가득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박영숙선생님을 자주 뵙진 못했지만 오랜 기간 여성환경연대와 함께 한 작업들이 많았어요. 박영숙선생님 1주기 추도식때 여성플라자 1층에 마련했던 전시와 체험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여성재단의 제안으로 박영숙홀을 디자인한 것은 저에게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박영숙홀은 작은 공간이어서 단점일 수도 있지만 덜어내는 과정에서 가치를 더 극대화시킬수 있었어요. 교육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이면서 전실의 효과를 주기 위해 조명도 더 신경을 쓰고 박영숙선생님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여성도 약자이고 환경도 약자다
그는 디자인이 사회를 위해 해야하는 역할이 있다고 했다. “디자인은 원래 공공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이 사적인 이익과 만나면서 소비의 대상으로만 한정되었던 거죠.” 디자인의 공공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해보고자 2년 동안 시림시설에서 청소년들을 만났다. “생태, 환경의 관점을 청소년활동과 접목시켜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절기력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절기력은 14~15일 주기인 반면에 일주일 단위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겐 사용하기 불편함이 있더라구요. 더 연구중에 있습니다.” 최근 문래, 홍대, 상수 등에서 도시 텃밭을 디자인하며 관찰한 텃밭 식물의 한해살이를 돌아볼 수 있도록 <식물이 자라는 시간> 컬러링을 제작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100인 기부릴레이 철학
올해로 세 번째 도전한 100인 기부릴레이는 그에게 가치와 철학에 대한 도전이었다. “콩 한쪽도 나누는 것. 기부릴레이는 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이끔이는 기부를 요청하고 약정을 통해 기부금을 받는 과정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이 있어요. 기부를 요청하는 일은 젠더가 어떤 의미인지, 왜 여성에게 기부해야하는지, 여성재단 역할이 왜 필요한지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부금이 잘 쓰이는지도 살펴보아야겠죠. 저 스스로 단련이 되어야 상대방에게 권할 수가 있어요.”
두 달 정도로 종료되는 100인 기부릴레이를 조금 안타까워했다. “나와 함께 100인 기부릴레이에 참여한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일까? 이름, 참여자수 등 데이터로 말고 한명 한명의 나눔 이야기를 그래픽 등으로 드러낼 수 있거든요. 그 이미지를 엽서로 만든다거나 하는 방법으로도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지만 치유 역시 사람에게 받거든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디자인
그는 삶을 디자인하는 일에도 생각이 많다. 자본에서 자유로운 삶,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제 도시 안에서 최소한의 노동으로 살아가기 위해 실천에 옮겼다. 텃밭의 노동을 통해 먹거리를 마련하고,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도 보고 나에게 적당한 크기의 주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실행해가면서 만난 공동체… 그는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생산의 주체가 되어야 해요. 기계로 생산한 것들은 소비도 빨라요. 개개인의 분절화된 삶은 불안감을 조성하여 소비를 조장해왔습니다. 생산에 직접 참여하여 퇴화해버린 인간의 생산력을 회복하고 자기만족감이 높아지면 소비는 줄어들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다다르자, 그는 조만간 자신의 이름을 건 그린디자인연구소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그 안에서 기본적인 제품생산, 교육, 워크숍, 공간 디렉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린 디자인의 개념과 철학이 담기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경래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자 한권의 책을 다 읽어낸 것처럼 뿌듯하기도 하고 너는 어떻게 삶을 디자인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실천해보라는 힘도 함께 받은 것 같아 왠지 기운이 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