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공간문화개선사업> 변화스토리_경계를 허물자, 당당하게: 충북여성장애인연대

  •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공간문화개선사업

경계를 넘보다
충북 청주시내의 번화가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서면 놀랍게도 한 건물의 2층에 ‘충북여성장애인연대(이하 충북여장연)’가 자리잡고 있다.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넓은 공간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다른 곳보다 많이 넓지요? 휠체어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간섭을 받지 않고 움직이려면 이 공간도 모자라요.”라며 공간의 크기에 압도당하는 방문객들이 익숙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한 활동가가 인사를 건넨다.
유독 지체장애인들이 많이 내방하는 이 곳은 방문한 날에도 소규모 집단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이동을 한다거나 어떠한 활동을 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는 필요이상의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곳 충북여장연에 내방하는 장애인들은 다르다. 이 ‘공간’ 안에서는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자신이 쓴 컵 하나를 씻더라도 비장애인들보다 느리긴 하지만, 소신있게 그리고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컵을 다 씻은 활동가가 어쭙잖게 서 있는 나를 부른다. “고구마차 한 잔 드실래요? 청주가 고구마로 유명한 건 아시죠?”라며 능숙하게 차를 타는 모습이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난생 처음 맛보는 뜨거운 고구마차 덕분인지, 무심한 듯 저만의 방법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속깊은 인정 덕분인지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경계를 늦추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싱크대가 워낙 높게 설치되어 있어서… 이렇게 공간이 바뀌고 나서 얼마나 좋던지.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 저 탕비실입니다. 싱크대 하나를 바꾸더라도 이용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거든요.“라며 상대방의 찻잔을 빠르게 살핀다. 한 눈에 보아도 ‘나 베테랑이오!’라고 얼굴에 씌어진 활동가는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지만, 예전에는 더 심했지요. 장애인들이 이렇게 모여서 뭔가를 한다고 하면 동네 사람들이 앞장서서 반대를 했어요. 집값 떨어진다고… 요즘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대놓고 모여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게…”라며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공간 개선 전,후에 크게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었다. “이 곳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장애인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욕구가 해소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비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며, 욕구가 해소되면 장애인들도 당연히 기분 좋아집니다. 이 곳에 오는 모든 이용자들이 ‘장애인들도 좋은 곳에서 당당하게 활동해도 되며, 그런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생각하길 바라고, 이런 인식개선을 위해서 저는 이전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아무리 호소를 해도 믿어주질 않았거든요. 이제는 이 공간에 오는 것만으로도 ‘우리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그 힘에 압도되어 절로 경계가 풀렸다.


경계를 허물자, 당당하게

“사람들은 흔히들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적 차별에 대항을 해야 하니 더 힘들겠다며 동정어린 시선으로 위로를 보냅니다. 당연히 힘듭니다. 그렇다고 매일 투정만 부리며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먼저 ‘아, 그래. 너 힘들지? 내가 도와줄게.’라고 알아차려주지 않습니다. 그 힘듦을 극복하고, 우리도 ‘보통의 삶’을 살고자 이렇게 매일 모이는 겁니다.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데요. 거기다가 일반사람들도 얻기 힘든 공간개선 기회를 통해 이렇게 멋진 공간으로 변했잖아요. 개별상담실에서 치유받고, 집단상담실에서 서로 연대하고, 담론을 생산해나가다보면 세상의 경계도 서서히 허물어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목소리를 낼 거예요. ‘경계를 허물어 주세요’가 아니라 ‘경계를 함께 허물자’라고 당당하게 제안할 거에요.


경계를…

공간의 변화로 인해 뜻을 함께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매일매일 더 많은 아이디어가 솟아나며, 공간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는 활동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러한 진심과 힘과 가치를 더욱 갈고 닦고 단단하게 만든다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경계를 허물수 있을 것 같다. 왠지 이 곳 충북여장연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너무나 당당하게 말이다.
변화된 공간이 권리와 존엄성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출발의 장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당당하게 건네는 차 한 잔에 경계가 허문 것처럼.

<저작권자© 한국여성재단> 2019/12/31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