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행복한 곳, 전주푸른여자단기청소년쉼터

  •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공간문화개선사업

재잘거림이 문틈을 타고 작게 새어 들어왔다.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어가 있었다. 급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문을 열자 아이들이 와르륵 들어와 공간을 채웠다.

공간 바뀌고 제일 좋은 거는 깔끔해져서 좋고요, 상담실이 생겨서 좋아요. 전에는 상담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불편하고 말을 하기 부끄러웠는데 선생님이랑 단 둘이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전주푸른여자단기청소년쉼터 이용 청소년 김00)

교육실에 빔(프로젝트)이 생긴 거요. 빔으로 영화 볼 수 있어서 좋고, 미술 같은 것도 교육실로 내려와서 하니까 편해요.” (전주푸른여자단기청소년쉼터 이용 청소년 박00)

공간개선 이후를 묻는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이 쏟아졌다. 2017년 공간개선 사업으로 교육실과 상담실을 단장한 전주푸른여자단기청소년쉼터(이하 전주푸른청소년쉼터)에서 공간활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술치료가 있다기에 방문했던 차였다. 쉼터 아이들이 미술시간을 갖기 전에 잠깐 교육실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아이들을 문밖에서 서성이게 만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하면서도 이들이 이 공간에 갖고 있는 애정이 느껴져 마음 한편이 흐뭇했다.

2002년 개소해 올해로 16년차를 맞이한 전주푸른청소년쉼터는 여자청소년 쉼터로는 지역 내 유일한 곳이다. 그만큼 일도 많고 책임도 무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청소년들이 머무르며 신체,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시설인 만큼 세심하고 안전한 공간이 절실했다. 개소 후 처음 머물렀던 시설은 쉼터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열악했다. 이후 보다 나은 환경을 모색하다 2008년 현 건물로 이전했다. 전에 비하면 건물의 규모와 외관은 나아졌지만 학원으로 쓰던 공간을 그대로 활용하다보니 분리 된 상담실이나 교육시설을 갖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전부 뚫려있는 공간이라 진솔하고 진지하게 상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그나마도 공간분리가 안 되어 있어서 프로그램 진행을 하려고 하면 상담을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공간개선 이후 상담실이라는 아늑한 공간이 생기니까 아이들과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해지고 아이들도 자기 얘기를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꺼내주더라고요.” (김선덕 실장)

겨우 블라인드 하나로 공간을 나누어 상담과 교육을 동시에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공간이
⇓  상담공간과 교육공간이 각각 생겼습니다

가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시설을 바라보는 뭇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비행이나 탈선으로 연결 지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쉼터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폭력이나 가정해체로 인해 가정으로부터 밀려나다시피 해 이곳에 와있다. 또한 일정한 거처 없이 유해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 역시 쉼터가 품고 보듬어야 할 청소년이기도 한 것이다.

전주푸른청소년쉼터는 가족으로부터 받는 보호와 가족구성원으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최대한의 지원과 사랑으로 제공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아이들을 선도하거나 프로그램의 효과를 내야한다는 부담을 갖기보다 그저 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도 모르게 미술작품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문정희 미술치료전문가)

공간개선 전, 특히 겨울에는 주로 2층 생활관에서 미술치료가 이루어졌었다. 생활관이다 보니 티비 등의 살림살이가 많아 집중도가 떨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1층에 난방시설이 없어 너무 추운 탓이었다. 히터라도 틀어보려고 하면 전력부족으로 차단기가 내려와 사용이 불가했다. 그래서 이번 공간개선사업을 통해 전기시설도 함께 정비해 시설의 안전함도 구축했다.

공간개선을 통한 환경의 변화는 단순히 공간의 활용도와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환경을 바꾸는 일을 사람이 하지만 사람이 환경으로 인해 변하기도 한다. 특히 이곳 쉼터처럼 이용자들이 거주를 하는 곳일수록 환경과 생활의 관계가 밀접해진다.

아이들이 쉼터에 대한 생활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 공간이 깨끗해지면서 아이들 스스로 청결을 챙기기도 하고요, 애착이 생겨 같이 아끼고 깨끗하게 생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엄인영 선생)

2017년 공간개선사업으로 1층 교육실 및 상담실을 리모델링한 것에 이어 모 가구업체의 지원으로 2층 생활관까지 변화하면서 요즘 푸른청소년쉼터는 활기가 넘친다. 새롭게 변화된 공간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쉼터의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문 밖 아이들의 기다림에도 인터뷰를 쉬이 끝낼 수 없었던 건 쉼터 담당자들의 열정에 넋을 놓고 있었던 탓도 있다. 지면의 한계로 그들의 에너지를 다 담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정진해 소장의 인터뷰를 짧게 정리하는 것으로 이번 취재담을 마무리할까 한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 청소년들은 ‘늘’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적어도 쉼터에 들어온 친구들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 아이들이 잘 성장해서 사회에 나가 제 몫을 하고, 그 몫이 다음 세대를 위해 쓰이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기도 하죠.
올해는 공간개선이 된 만큼 지역 청소년들을 직접 발굴하고 찾아서 그 친구들에게 제공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해보려고 해요. 또 우리 쉼터에서 수공예 강사자격을 취득한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의 강사경력도 쌓을 겸 이 공간에 지역사회 아이들을 모아서 강의를 열어볼 계획이에요. 주민 대상으로 무료강의도 진행해 보고요. 그렇게 점차 경력이 쌓이면 강사료를 받고 자립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지 않을까 기대해요.” (정진해 소장)

글 ㅣ 이소망 작가

<저작권자© 한국여성재단> 2018/01/30 18:17